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졸업까지 6개월이 남았습니다. 해외 대학원 진학은 이미 정해져 있고요. 남은 시간에 워킹홀리데이 같은 경험을 해보고 싶은데, 요즘처럼 취업이 어려운 시국에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좋을까요?
짧게 답하면 이렇습니다. 사람을 겪을 수 있는 일을 고르십시오.
왜 그렇게 답했는지 적어 두려고 합니다.
먼저, 이 질문은 보통의 진로 고민과 다릅니다
진로 조언은 대부분 ‘취업’을 목표로 깔고 시작합니다. 무엇이 이력서에 유리한가, 어떤 자격증이 더 쳐주는가, 어느 회사 이름이 다음 문을 열어주는가.
그런데 이 분은 갈 곳이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남은 6개월은 이력서를 채우지 않아도 되는 시간입니다. 이게 얼마나 드문 조건인지는 지나고 나서야 압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다음 자리를 얻기 위해 쓰이고, 그렇게 쓰인 시간은 대체로 서로 비슷해집니다.
그러니 물어야 할 것은 “무엇이 취업에 유리한가”가 아닙니다. 이 6개월이 아니면 못 할 일이 무엇인가.
업무를 익히는 데는 짧은 시간이 걸립니다
제가 일하면서 확인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일 자체를 배우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적게 듭니다.
새로 온 사람이 업무를 파악하는 데 몇 달이면 충분합니다. 도구는 더 빠릅니다. 요즘은 AI 가 웬만한 것을 옆에서 가르쳐 줍니다. 6개월 동안 혼자 익힐 수 있는 기술은, 6개월 뒤에 다른 사람도 익힐 수 있는 기술입니다.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와 다른 나이대, 다른 성향, 다른 처지의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불편해하는지 — 이건 몇 달 만에 늘지 않습니다. 겪은 사람의 수와 종류가 쌓여야 합니다. 지름길이 잘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짧게 드는 쪽 말고 오래 걸리는 쪽을 먼저 시작하시라는 것입니다.
시니어가 AI를 더 잘 쓰는 이유
요즘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AI 때문에 신입 자리가 줄어든다고요. 절반은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제가 보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같은 AI 도구를 줘도 경력 있는 사람이 훨씬 나은 결과를 냅니다.
도구를 능숙하게 다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프롬프트를 다루는 손은 젊은 쪽이 빠릅니다. 차이는 다른 데서 납니다.
-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압니다. 문제를 잘못 잡으면 AI 는 잘못된 답을 아주 빠르게 내놓습니다.
- 나온 답이 이상한지 압니다. 그럴듯하지만 현장에서 안 통하는 답을 걸러냅니다.
- 그 답을 누구에게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압니다. 같은 결론도 받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꺼내야 통합니다.
셋 다 사람과 업무를 알아서 생기는 능력입니다. 도구 사용법이 아닙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신입이 못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직 쌓을 시간이 없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지금부터 쌓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6개월이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제 말의 요지입니다.
AI를 써도 끝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AI 가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그 결과를 받는 것은 사람입니다.
보고서를 읽는 상사가 있고, 대시보드를 열어야 하는 현업이 있고, 제안을 승인하거나 거절하는 결정권자가 있습니다. AI 가 내놓은 답이 아무리 정확해도, 그 사람이 납득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AI 시대의 일은 점점 양 끝으로 갈라집니다.
한쪽 끝은 사람들이 두서없이 하는 말에서 진짜 문제를 꺼내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말하지 못합니다. “매출 좀 보고 싶어요”라는 말 뒤에 실제로 있는 질문은 전혀 다른 것일 때가 많습니다.
다른 쪽 끝은 결과를 사람에게 납득시키는 일입니다. 숫자가 맞다고 사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 사이의 계산은 빠르게 자동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양 끝은 둘 다 사람 쪽에 있습니다. 사람을 겪어 본 적이 없으면 양 끝 어디에도 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기회가 줄었습니다
요즘 젊은 분들을 보면 한 가지가 눈에 띕니다. 다양한 나이대나 성향의 사람을 만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또래끼리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스무 살 위 사람, 말이 안 통하는 사람, 화가 난 사람 앞에서는 굳어버립니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시기에 그 연습을 통째로 못 한 세대입니다. 사람을 부딪치며 배우는 몇 년이 비대면으로 지나갔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다만 비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저절로 채워지지도 않습니다. 의식적으로 그런 자리에 가지 않으면 계속 비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처음 겪는 어색함을 견디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지금이 좋습니다. 이 6개월은 서툴러도 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제 답은 이렇습니다
순서로 적으면 이렇습니다.
인턴 자리가 있으면 먼저 찾아보십시오. 조직이 실제로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밖에서 안 보입니다. 누가 무엇을 결정하고, 결정이 어떻게 뒤집히고, 회의에서 말해지지 않은 것이 어디서 정해지는지. 이건 책에 없습니다. 업무를 익히는 시간이 짧다는 것도 여기서 직접 확인하게 됩니다.
인턴이 안 되면 사람을 직접 만나는 일을 고르십시오. 호텔이나 마케팅 쪽이 좋은 예입니다. 손님을 맞고, 불만을 듣고, 왜 사람들이 그렇게 반응했는지 들여다봐야 하는 일.
다만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만나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차이가 ‘경험’과 ‘아르바이트’를 가릅니다.
호텔과 마케팅을 굳이 든 이유
두 일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피드백이 즉각적이고, 거짓말을 못 합니다.
호텔은 하루에 수십 명을 만납니다. 그중 상당수는 불편한 상태로 옵니다. 피곤하거나, 늦었거나, 기대와 달랐거나. 짧은 시간에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 읽고 대응해야 합니다. 잘못 읽으면 바로 표정으로 돌아옵니다. 나이대도 국적도 제각각이라, 앞에서 말한 그 연습이 하루에 수십 번 일어납니다.
마케팅은 사람이 왜 사는지를 계속 틀리면서 배웁니다. 이건 될 거라고 확신한 것이 안 되고, 별 기대 없던 것이 됩니다. 내 가설이 틀렸다는 걸 몸으로 겪는 일입니다.
어느 쪽이든,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추측이 아니라 관찰로 알게 됩니다.
제 일에서도 같은 것을 봅니다
저는 데이터를 다루고 대시보드를 만듭니다. 이쪽 일에서 실패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기술이 아닙니다.
만든 사람이 쓰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것입니다.
지표는 정확하고 그래프는 예쁜데 아무도 열지 않는 화면이 생깁니다. 현장에서 실제로 궁금한 것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어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없었던 것이고요.
트렌드 분석 리포트가 놓치고 있는 것에서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깔끔한 숫자 밖에 있는 현장의 목소리 — 고객 상담 내용, 영업 담당자가 반복해서 듣는 질문, 리뷰의 표현이 달라지는 것. 초기 신호는 대개 거기에 먼저 나타납니다.
숫자를 읽는 사람이 사람을 못 읽으면, 그 숫자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릅니다. 이건 비즈니스와 데이터: 문제에서 해결까지에서 계속 붙잡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만 부탁드리자면, 기록하십시오
겪는 것만으로는 남지 않습니다. 6개월 뒤에 기억나는 것은 놀랍도록 적습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고, 나는 어떻게 예상했고, 실제로는 어떻게 됐는지. 세 줄이면 충분합니다. 매일이 아니어도 됩니다.
특히 내 예상이 빗나간 날을 적어 두십시오. 사람에 대한 감각은 맞힌 날이 아니라 틀린 날에 늡니다.
이 기록이 대학원에서 재료가 됩니다. 남들이 논문에서 읽은 것을 말할 때, 직접 본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마지막으로
취업이 어려운 시국이라 조급해지는 건 당연합니다. 주변이 다 불안하면 나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미 갈 곳이 정해진 사람이 남들과 같은 불안을 따라갈 이유는 없습니다. 지금 조급함에 떠밀려 스펙 한 줄을 더 얹는 것과, 사람을 겪어 보는 것. 10년 뒤에 남아 있는 쪽은 후자입니다.
기술은 계속 바뀝니다. 지금 배운 도구는 대학원을 마칠 때쯤이면 상당 부분 옛것이 됩니다. AI 는 더 빨리 바뀝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감각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감각이 있는 사람이 결국 AI 도 더 잘 씁니다.
그 6개월에 그걸 얻어 오시면 됩니다.